다윈의 진화론에 대하여

찰스 다윈의 진화론

 

1831년, 영국의 해군 측량선 비글호는 남아메리카로 가서 해안을 탐사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배에는 23세의 영국 청년 찰스 다윈이 있었는데, 이 청년은 5년간의 항해동안 18권이나 되는 관찰일지를 작성했다. 

다윈은 항해에서 비글호 대원들과 함께 섬과 해안, 열대 우림을 탐험했다. 어디를 가든 화석과 식물, 곤충과 새를 수집했고, 표본을 만들고 특징을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비글호가 남아메리카에 도착했을때 다윈은 이곳엔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왜 토끼가 살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종은 왜 그곳에 살고, 어떤 종은 살지 않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은 다윈이 진화론을 세운 기초가 되었다.


갈라파고스 제도, 진화론의 섬

1835년 비글호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했다. 검은색 화산암으로 된 섬이라 해변에는 검은색 모래가 펼쳐져 있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신기한 동식물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섬들은 불과 수십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데도, 섬에 사는 동식물들이 각각 다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다윈의 관심을 끈 것은 핀치라는 새였다. 섬마다 핀치의 생김새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서식하는 핀치가 원래 남아메리카에 살다가, 어떤한 이유로 9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핀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그 결과 생김새가 달라진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같은 계통의 생물이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생김새나 특질 역시 조금씩 달라진다. 이것은 다윈이 '생물 종은 진화한다'고 믿게된 계기이다.

원래 핀치의 부리는 같은 모양이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섬에 있는 먹이에 따라 모양이 변한 것이다. 즉.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부리의 모양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영국으로 돌아온 다윈은 자신이 직접 본 것을 정리하고 생명의 신비를 풀기 위해 진화론을 정리하여 '종의 기원'이란 책으로 내놓았다.

종의기원


진화론을 둘러싼 논란, 원숭이 재판

다윈이 1859년에 '종의 기원'이란 책에서 진화론을 발표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인간이 원숭이와 똑같은 조상한테서 갈라져 나왔다면, 원숭이와 인간사이의 '잃어버린 링크'는 무엇인가?

'다위의 학설을 뒷받침할 화석이 부족하다.'

그러나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멘델은 완두콩을 교배 시키며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쳐줄 유전 법칙을 찾아냈다.

 

1925년, 미국에서는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법정 논쟁이 일어났다. 그 무렵 진화론이 과학적 이론으로 정립되어 가고 있었으나, 기독교인이 많은 미국에서는 창조론이 우세했다. 그러던 차에 1920년대 미국 테네시 주에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버틀러 법이 통과되었다. 

 

그후 1968년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 연방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버클러 법은 폐지되고, 진화론은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같은 해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고 이처럼 유전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생물의 설계도인 DNA가 발견되면서 진화론은 점차 굳건히 확립되었다.


다윈이 남긴 말

1. 거리낌없이 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아직 삶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다.

 

2. 내가 만약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시를 읽고 음악을 들을 것이다.

 

3.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4.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5. 잘못을 고치는 것은 그 자체로 위대한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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