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벡, 위험사회에 대하여

울리히 벡, 위험사회에 대하여

현대사회의 위험은 근대성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는 무엇이며, 극복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위험사회란 무엇일까?

울리히 벡(1944년 5월 15일 ~ 2015년 1월 1일)은 독일 사람으로 전 포스팅에서 살펴본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현대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입니다.

뮌스터 대학교와 밤베르크 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뮌헨 대학교의 사회학연구소장을 맡았으며, 독일 바이에른 및 작센 자유주 미래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미래위원회 위원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시민노동 모델을 발전시키기 시작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한 해인 1986년, 울리히 벡이 발표한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를 향하여]는 20세기 말 유럽인이 쓴 사회 분석서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서구를 중심으로 추구해 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 가공스러운 위험사회를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그해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파장과 더불어 이 책은 큰 화제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의 견해는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용어와 관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울리히 벡은 산업사회와 위험사회를 구분합니다. 산업사회는 '재화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위험사회는 '해악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물론 위험사회를 만들어내는 근본적 원인이 산업화에 있으므로, 위험사회 역시 여전히 산업사회입니다. 하지만 위험사회와 산업사회의 원리는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으며, 산업사회는 점차 위험사회로 옮아갑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에서 위험이란 인간의 의도나 바람과는 전혀 무관하며, 일단 작동하기 시작하면 대부분 인간의 능력으로 통제 불가능하게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되새겨 보면 현대적 위험의 성격을 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가 힘들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불확정된 위험, 원전의 방어벽을 높게 쌓았으나 그보다 높은 해일이 닥친 순간 인간은 속수무책이 되어 버렸죠.


위험사회의 주요 특징

첫째,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말이 잘 표현하듯이, 과거의 위험은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굶주림, 아사 등 분배가 부족해서 생긴 것이어서 계층적으로 차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오염 등의 위험은 부자나 권력자 등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위험이 '평등화'된 것입니다.

 

둘째, 위험의 '전지구화' 입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에서 발생한 위험이 인근 우리나라,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탈국가적'양상을 보입니다.

 

셋째, 사회적 불평등의 개인화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노동자는 작업 특성과 능력에 따라 구분되며, 연봉제 등으로 같은 노동자라도 입장이 다릅니다. 이제 사회계급적 속성은 약화되고, 불평등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넷째, 현대사회에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보편적 역할 구분이 사라지고, 소통방식이 개인화됩니다.

 

다섯째, 과학은 진리의 지위를 잃어버렸습니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위험 앞에서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며, 오히려 위험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위험사회에서 벗어나기

울리히 벡에 따르면, 현대 산업사회를 '위험사회'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합리성' 그 자체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성에 기반한 근대성에는 필연적으로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험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울리히 벡은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버리고, 지금까지의 근대화로 인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성찰적 근대화'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찰적 근대화란 산업사회의 원리 자체를 '성찰'하여 산업사회를 해체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근대성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근대성'으로 나아가자는 것이죠.

 

또한, 현대 과학기술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그 한계도 함께 인식하여 과학에 대한 사회적 제어력을 높여야 합니다. 기술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사회와 기술공학 체계 자체의 복잡성을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울리히 벡은 성찰적 근대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궁극적으로 '국민국가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근대 국민국가는 그동안 제도적 기구를 통해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통제해 왔지만, 이제 이러한 틀로는 더 이상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복지문제 등 미시적 차원의 문제와 전 세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후변화, 세계 경제위기 등의 거시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울리히 벡이 주장하는 성찰적 근대화는 아직 실현되기에는 현재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위험이 우리가 건설한 현대사회와 우리 삶의 평온과 안락으로부터 자란다는 점을 인식하고, 일상에서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고 타자와의 생각을 공유해 낸다면, 위험사회의 위험들을 하나씩 해결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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