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 인문학, 철학
- 2020. 4. 4.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서 감옥의 역사와 형벌 제도의 변화를 연구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 감옥 제도가 왜, 어떻게 만들어지고 널리 퍼졌는지 밝혔다. 또한 권력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해 왔는지 연구했다.
[감시와 처벌]은 1757년 루이 15세를 죽이려다가 미수에 그친 다미앵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다미앵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고 하는데, 광장에서 잔인하게 공개 처형을 당했다. 수많은 파리 시민들이 이 처형 장면을 지켜보았고, 처형 장면은 정말 끔찍하다고 한다.
당시 권력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권력은 잔혹한 공개 처벌로 힘을과시한 것이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18세기에 계몽주의 사상의 등장으로 인권과 자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며, 권력은 차츰 합리성을 중시하는 이성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19세기가 되자 공개 처벌과 가혹한 신체형은 거의 사라졌으며, 그대신 감옥에 가두는 감긍형과 강제 노동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권력은 더욱 교묘하고 효율적으로 힘을 행사 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영국의 감옥 환경은 3개월 동안 300여명의 죄수들이 굶어죽을 정도로 매우 열악했다. 18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자였던 제러미 벤담은 적은 수의 간수로 많은 죄수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바로 그것이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이다.
파놉티콘은 감옥 중앙에 감시탑이 높게 솟아 있고, 그 주위에 둥그렇게 감방이 있다. 감시탑에서 나오는 밝은 빛은 감방 곳곳을 비추어 간수는 죄수들이 무엇을 하는지 일거수 일투족 볼 수 있다.
죄수들은 원형 감옥에서 항상 감시를 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며, 점차 권력의 요구에 따르고 규율에 복종하게 된다. 즉, 죄수들이 권력의 요구를 '내면화'하여 스스로 통제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독재 국가의 사람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기고 싶더라도, 독재자의 감시의 시선을 의식한게 된다. 즉, 자기도 모르게 권력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형 감옥의 가장 무서운 힘이다.
한편 형벌 제도는 공개 처벌과 가혹한 신체형에서 감옥의 탄생까지, 점점 인간적인 방향으로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셸 푸코는 이러한 변화가 인권 의식이 발전했기 때문에 생긴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개 처벌로 인해 반발과 한계에 부딪힌 권력이 적은 돈을 들여서 더욱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전략을 바꾼 것뿐이라고 말이다.
권력은 보이지 않게 모든 곳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우리나라 교실에서 학생들은 분단별로 가지런히 교탁을 향해 앉아 있다. 학생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없지만, 교사는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각자 번호가 주어지고, 생활기록부에는 성적과 출석 상황, 각종 활동이 꼼꼼하게 기록된다. 그 기록은 수십 년이 넘게 보관된다.
권력이 통제와 감시를 잘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권력은 지식의 힘을 빌려 '정상'과 '일탈'을 자꾸 구분하려 든다. 예를들어 조선시대에는 시계가 없어 새벽에 닭이 울면 일어나서 서당에 갔다. 수업 시작 시간에 늦으면 혼이 났지만, 5분, 10분 단위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계를 보며 1분 단위로 확인한다. 출근 카드가 있는 회사에서는 기록이 남고, 1분만 늦어도 지각으로 체크한다. 학교에서도 지각과 결석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예전에는 사소했거나 조금 부도덕하게 여겨졌던 문제, 이를테면 지각 같은 문제가 지금은 처벌 대상이 된다. 벌점이 쌓이면 직원의 근태 상황표나 학생의 생기부에 기록된다. 권력은 아주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다.
현대사회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규율을 정해 놓았다. 질서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본보기를 정해 놓고,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통해 스스로 통제하도록 만든다. 이런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도 이러한 잦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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